"삐끗했어요."
병원 로비에서 문 밖으로 걸어오는 낯빛이 답지 않게 옅어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빠른 걸음으로 몸이 닿을 만치 가깝게 다가가고 나서야 붕대와 깁스로 싸여있는 손가락 몇 개가 시야 안으로 똑똑히 들어왔다. 걱정끼치지 않겠다는 듯 하얗게 웃고 있는 얼굴이 속상해 제라드는 멋쩍게 웃어버렸다. 손을 뻗어 다친 손을 잡았다. 옅은 온기보다 딱딱한 철의 촉감이 먼저 잡혀왔다. 제라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가 보지 못하는 사이 다시 얼굴 근육을 풀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심하게 다쳤네요."
"아아, 그게... 늑대한테 좀 물렸슴다아..."
쭉 빠지려고 했는데 너무 사납게 달려들지 뭡니까아! 울분이 받힌 듯 들려오는 억울한 목소리를 들으며 제라드는 메듀사 모니터 안쪽에서 한 쪽 손을 붙들고 고통스럽게 신음하며 쓰러진 키 큰 인영의 장면을 떠올렸다. 내색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제가 얼마나 그 곳에서 피그말리온을 붙잡고 저 곳으로 가야겠다며 주장하던 광경도. 마음 속으로 제게 마탄을 겨눈다. 빵. 그때 그 순간은 없는 일이다.
"오늘은 사정이 있어서 피그말리온이 모니터링을 했거든요. 많이 아팠어요? 울진 않았죠?"
"우, 울다뇨?! 안 울었어요. 제라드씨도, 좀 아프긴 했는... 어..."
말이 흐려진 까닭은 제라드가 대답을 들으며 바로 다른 손을 잡아쥐었기 때문이다. 다치지 않은 손에도 여기저기 긁힌 자국이 가득하다. 날카롭게 돋아난 늑대의 이빨 끝을 저도 모르게 상상하며, 제라드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어깨에 기댔다. 슬쩍 고개를 들어 눈을 바라보다 오묘한 오팔 빛이 도는 눈동자가 자신을 걱정스레 내려다보고 있다. 토마스의 표정에는 감정이 바로 깃든다. 순식간에 다양한 표정의 가면을 바꿔 쓰는 일인극의 연극 배우같기도 해 제라드는 그것이 늘 새롭고 하나하나 눈에 익혀두려 한다. 능력을 인정받고 환하게 웃는 토마스, 좋지 않은 일을 떠올리고 분에 찬 얼굴을 하고 있는 토마스. 얼굴이 잔뜩 빨개져 좋아한다고 말하는 토마스. 허나 울고 있는 토마스는, 그 원인이 기쁨에 의거하지 않았다면 되도록 상기하지 않으려 한다. 자신의 반려가 슬픔에 못 이겨 목놓아 우는 것을 바라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개운치 않은 목소리로 제라드는 토마스의 손을 꾹 잡아쥐었다. 손 안쪽에서 꾸물거리던 손이 제라드의 손가락 사이로 파고들며 어느새 단단하게 깍지를 낀다.
"힘들었죠?"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묻는 것 뿐이다. 토마스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며 제라드는 작게 웃었다. 그와 함께 슬픔을 나누며, 웃었다. 마음이 곧 꺼질듯 무겁게 내려앉아 있더라도 사랑이 옆에 있다. 제라드가 사랑하는 이의 바로 옆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하는 나름대로의 방식이기도 했다. 까만 밤하늘 아래의 등대처럼, 의식을 반쯤 잃은 이의 앞에서 쳐내는 박수처럼.
"오늘 일은 잊고 집에 가서 쉬어요."
"...같이 가요."
"힘들면 말해요. 뭐든지 내가 도와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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